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직시하며 성장합니다
윤수훈(슌) 작가는 브런치에 글과 그림을 꾸준히 연재하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귀여운 그림과 따뜻한 글로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 <그냥이 어때서>, <무대에 서지 않지만 배우입니다>, <취야진담>, <계획대로 될 리 없음!>을 썼다. 슌 작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혼자 여행을 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또 다른 나를 계속 발견하고 직시하며 성장하고 있다. 나 자신과 친구가 되는 과정을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슌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슌 작가, 윤수훈이라고 합니다.
요즘 일상이나 근황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최근에 독립을 했어요. 이 공간은 사무실 겸 생활하는 곳인데 이제 이사 온 지 두 달 넘었네요. 좋아하는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하면서 이곳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서 그런지 취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독립해보니 어떠세요?
혼자 생활하니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있어요. 제가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 이유가 평상시에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독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혼자 여행 다니면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선택하잖아요. 어느 식당에 가고 어떤 메뉴를 고를 것인지, 하나하나 선택의 연속이죠. 독립도 그래요. 오늘은 어떤 집안일을 하지? 빨래를 할까? 방 청소를 할까? 선택하면서, 나는 이런 기분일 때 이걸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알게 되고.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독립하기 전 가족들과 같이 살 땐, 제가 게으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웃음) 굳이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설거지나 빨래 같은. 그런데 독립을 하고보니 이제 이 공간을 제가 책임지지 않으면 그저 방치되어버리는 거에요. 저의 공간을 지저분하게 두고 싶지 않으니 집안일을 마땅히 하는데. 이게 전혀 귀찮거나 싫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나는 게으른게 아니었구나, 나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였구나라고요.
그리고 함께 사는 사람이 없으니 이 공간을 온전히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밀 수도 있어서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반문하고, 선택하고, 채워가면서 저의 취향도 알아가고 있어요.
일상 속에서 ‘나’를 잘 캐치하고 정말 내면의 자기를 잘 들여다보시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긴 한데, 저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를 제일 잘 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같이 살아가는 존재니까. 현재 저에게 있어 제일 큰 관심사는 ‘나’에요. 어릴 적엔 전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다가갈 용기가 없었어요. 학창시절 제가 그림을 그렸던 것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칭찬을 받고 싶어서였고. 노래를 불렀던 것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온 거고요. 과거엔 제 삶의 의미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중심이 되어 찾았던 것 같아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상관이 없었겠죠?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야, 주변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아, 내가 나를 좋아해 주니까. 이게 가능했을 텐데 전 그게 아니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관심에 목말라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혹은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애쓰는 저 자신을 자각하면서부터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생각이 다를 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혹시 분위기를 망칠까?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하고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웠거든요.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지대로 따라가는 게, 점점 제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목소리를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한 거에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가? 왜 하고 싶은거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가? 왜 좋아하는 거지? 이런 질문들을 저에게 계속 물어봤어요.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저를 알게 되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있는 슌 작가님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궁금해요.
음.. 삶의 가치를 파악하려면 제가 어느 부분에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냐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제일 많이 쏟는 곳은 사람, 그러니까 인간관계에 쏟고 있더라고요. 저는 저를 둘러싼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삶의 가치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런데 요새 들어 생각이 조금 바뀐 건, 이젠 저도 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만을 바라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기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서려는 능동적인 태도로 변하고 계시는 거군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인 것 같아요.
나 자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들이 있으세요?
한 분야에 저보다 많이 아는 사람들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람에 있어서는 인간관계를 되게 잘하는 친구에게 가서 물어보고, 일로는 일하는 사람들한테 조언을 구하고요. 주변 분들한테 많이 물어보고 의견 구한걸 참고 해서 저의 기준을 세워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제 기준을 세우는 게 좀 쉬워지는 것 같아요. 저는 그림 그릴 때도 제일 어려운 게 흰 도화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것도 없으면 너무 어려워요. 그럴 때 저는 뭐라도 해요. 일단 선 하나라도 그으면 그걸 시작으로 뭐라도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다른 것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19년도부터 인스타툰을 꾸준히 연재 중이신데,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올해의 목표를 ‘안 될 것 같아도 되는 이유를 찾자!’라고 정하셨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인스타툰을 하면서 저 스스로의 한계에 머무는 느낌이 있었어요. 정말 감사드리게도 먼저 책 제안을 주시고, 일도 알아서 들어오고, 저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별다른 목표 없이 현재에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아, 뭔가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가 안됐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상실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컸었죠. 그런데 최근에 열정적인 분들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동기부여를 받았어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한 분야의 1등이 되고 싶어, 그건 그저 막연한 꿈일 뿐이지’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분들은 제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던 그 꿈을 정말로 꾸고, 그걸 목표로 만들고, 본인이 가진 것들을 다 끌어모아 어떻게든 그걸 진짜 해내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 꿈과 열정을 다시 슬쩍 열어보게 된 거에요. 아, 맞아 저거였지. 목표가 있어야 추진력을 얻을 수 있고, 설령 내가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얻는 게 분명히 있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일찌감치 세상이랑 타협하면서 살고 싶어했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감히 도전해보자’ 라는 목표를 가지게 됐어요.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을 먹었다면 안될 것 같은 이유를 찾기 전에 시도를 해보자! 그래서 올해의 좌우명을 ‘안 될 것 같아도 되는 이유를 찾자!’ 라고 정하게 된 거에요.
목표를 세우신 거 자체로도 멋지고 응원해요.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고 계시네요.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가 많잖아요. 어떨 때는 태어나니까 사는 거지 싶을 때도 있어요. 저는 그래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기에 ‘사랑’ 하나만 있어도, 그 자체만으로도 이 삶을 계속 살아가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주제로 넘어갔네요. 덴티스테 공식 질문인데요.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대상이 어떤 모습이든, 무엇을 하든 간에 ‘다 포용하고, 안아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감정은 ‘사랑’이라는 말 외에 어떤 것들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정의 내린 사랑을 알려주신 분은 저의 부모님이세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셨죠. 사랑하는 우리 가족. 아빠, 엄마, 누나, 매형, 지오, 서우까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들. 거창한 목표를 좇는 삶이 아니어도 그대들이 있어 나의 오늘이 밝게 빛나는 것 같아요. 사랑합니다.